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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김병하 아라라요/김보성노을녁 광대산 화암 약수대 산그늘 아래 8월 태양 속 녹음에 넘친 한나절 소리공무원 김병하의 아라리를 들었네 소리의 어른 안비취며 머슴 이춘희에 말석의 소인을 향해 나직이 내놓은 소리 정성~ 병하~라는 음감만큼 담백하네 오르는 산길 바람 소리인듯 내리는 계곡 물 소리인 듯 아리 아리리요~ 눈이 올라나~ 처연하여 눈길 서편 하늘 향하게 하고 텁텁하여 옛 동무 언약 떠올리게 하는 노래인 듯 푸념인 듯 속삭임인 듯 그대 역광에 여울지는 아라리 음표 아리인듯 아라리인듯 아리랑인듯 그 후 오랫동안 입속에 맴돌다 갔네. 아리 아라리 아리랑은 광대산 것인가요 그대 것인가요? 추천인: 최공린(영월문학회)"-1986년 여름 정선극장 공연과 강연하던 날 김보성-이란 주가 달린 시. 그 때의 김병하 선생 그려지네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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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메아리친 '정선아리랑'의 울림밀양에서 정선아리랑의 울림이 메아리쳤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제64회 밀양아리랑대축제가 3년 만에 오는 22일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잇다, 세계속의 밀양아리랑'이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보물 제147호 영남루와 밀양강변 일원에서 웅장한 아리랑대합창과 화려한 '아리랑대동난장' 막을 올렸다. 독도에서 제주까지 16개 자발적 아리랑 전승단체가 전승주체로서 창조적 주권을 구현한 '아리랑대합창'이 처음 시도되었다. 정선아리랑보존회(김길자)도 강원도 아리랑 전승단체를 대표해서 두 팔을 걷고 만장기를 들고 나섰다. 정선아리랑보존회는 우리나라 최초 아리랑전승단체이다. 연원을 살피면 1970년 전남 광주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수상자들이 구심점이 되어 시작하여 현재까지 전수교실 운영, 공연, 민속경연 참가 등 정선아리랑 전승보존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선아리랑축제는 올해 47회를 맞이하고 있다. 1978년 김병하 회장이 '아리랑전수회'를 창립하고,1994년 정선아리랑전수회로 새로이 단체를 결성했다. 이후 2002년 사단법인 정선아리랑전수회(초대회장: 유영란)가 설립, 별도로 2005년 정선아리랑보존회(초대회장:김길자)가 설립된다. 이후 두 단체가 통합한 사단법인 정선아리랑보존회는 정선아리랑 기능보유자 4명(유영란, 김남기, 김형조, 김길자)을 비롯한 정선아리랑 전수교육조교 7명, 전수교육을 거친 정선아리랑 이수자 13명, 전수장학생 6명이 주축을 이루어 2001년 여량면 여량리 아우라지 강변에 건립된 정선아리랑 전수회관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보존회 회원 중에는 자연스럽게 체득한 회원들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자연적 체득이란 전수교육과 같은 인위적 전승이 아니라 가족공동체 또는 마을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을 말한다. 민속의 가장 바람직한 전승 형태이다. 보유자 김길자의 경우 가정에서 할머니 정옥선과 부친 김병하(2007년 작고)로부터 자연스럽게 소리를 익힌 사실이 그 한 예이다. 이러함에서 정선지역이 비교적 자연적 전승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정선이 우리나라 아리랑의 전승 중심지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정선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 고개로 날넘겨 주게(후렴)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울어 전수교육 중심의 정기적 축제, 공개 공연, 창극공연, 경창대회, 시장공연, 전수교육, 그리고 가사 짓기 같은 활동을 통해 전승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특히 다른 전승지역과 다르게 주목할 점은 초등학교 교육에서의 성과와 경창대회 정례화와 타 지역 경연자를 참여시켜 교류를 확대시켜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원도 아리랑의 원심력과 구심력을 유지시키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김병하 명인의 대를 이어 아라리 명가의 가맥을 이어가는 김길자 이사장은 "사단법인 정선아리랑보존회가 전국아리랑전승단체와 함께 밀양시에 모였다. 앞으로 자발적 전승단체로써 국내외 개최되는 서울아리랑페스티발과 전국아리랑경창대회에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하려고 한다. 국내 고려인과 사할린 동포사회에서 개최되는 행사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 정선아리랑응 통한 동포애를 공유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전국 45여 개 지역 아리랑 전승단체 중 정선(통산47회), 밀양(통산64회), 문경(통산15회) 지역은 관주도 아리랑축제가 개최되어 오고 있다. 이번 밀양 둔치에 마련된 아리랑 대동무대에서 정선아리랑보존회와 문경새새아리랑보존회가 주체가 되어 자발적 전승활동을 시도한 첫 무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아리랑 행사라고 본다. 정선아리랑보존회 김길자 이사장은 "2020년 코로나로 인해서 잠시 연기된 사할린아리랑축제가 올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출발을 못하고 있다. 참가신청을 해놓고 하늘길을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찾아가는 아리랑' 공연과 '정선아리랑학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2시부터 4시까지 서울경기권에서부터 강원도, 영남. 충청, 호남, 제주에서 불려지는 아리랑을 만날 수 있다. 특히 7시 30분부터 시작된 2부 공연을 마치고, 휘날레에서는 전국에서 온 아리랑 전승단체들이 '아리랑대동난장'을 벌렸다. 이번 무대에서 227명이 한 무대에서 동시에 각자 자신의 지역 아리랑을 각각 불러서 '대합창. 한반도아리랑'을 탄생시켰다. 함께 한 전국 전승단체는 독도에서 제주까지 16개 지역 아리랑전승단체이다. 영남 지역은 영남아리랑보존회(정은하), 대구아리랑보존회(김상준), 문경아리랑보존회(송옥자), 영천아리랑보존회(전은석), 경산아리랑보존회(배경숙),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임규익), 울릉도아리랑보존회(황효숙), 독도아리랑보존회, 충청 지역은 공주아리랑보존회(남은혜). 진천아리랑보존회(박소정), 서울 경기권에서는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 동두천아리랑보존회(유은서), 강원도 지역은 정선아리랑아리랑보존회(김길자),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기연옥), 제주지역 제주도아리랑보존회(강소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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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주목되는 ‘국악공연 베스트 3’금년의 ‘국악계 10대 뉴스 선정’, 발표도 아쉬움과 허전함을 남겼다. 유사한 꼭지가 있어 부득이 순위에 포함시키지 못한 것, 그리고 소위 ‘국가적’ 또는 ‘사건적’ 활동이나 현상이 아니어서 제외된 것들이다. 이 중에서도 ‘고유의 국악 활동’을 지표화 하지 못한 것은 가장 큰 아쉬움이다. 그래서 금년에는 ‘주목되는 국악공연 베스트 3’라는 카테로리를 설정했다. 관객의 호응이나 홍보 효과를 얻지 못하였어도 의미가 있어 기록화 하여 사례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현상적인 안목에서 2000년대에는 기악 중심의 앙상블이 대세였고, 2010년대는 소리꾼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후자의 경우 전통 소리꾼을 프런트 보컬로 한 그룹 활동과 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낸 현상이다. 이어 2020년대는 ‘국악이 다른 예술장르에 변화를 주는 시대’로 맞게 될 듯하다. 이는 국악계 흐름에서 확인이 되는데, 국악CD를 콘텐츠화 한 ‘정창관의 세상의 국악CD’ 싸이트를 분석한 김중현 중대 겸임교수의 분석이다. 국악의 산업화 또는 국악계의 빈익부 부익빈 현상으로도 말해지만만 일단은 긍정적이다. 이런 2000년대 초입의 긍적적인 현상이지만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고유의 국악공연 활동’ 부문이다. 다소 표현이 부적절 할 수도 있지만 ‘고유’에 방점을 둔 것인데, 말하자면 지극히 기본적이고 보편적이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본연의 활동을 말 한다. 즉, ‘보존회 정체성을 유지하는 공연’, ‘전승/전수를 위한 공연’, 그리고 ‘사회적 국악 교육을 위한 공연’ 분야이다. 이를 대상으로 세 꼭지를 선정했다. 이름하여 ‘기자가 뽑은 2021 의미있는 공연 베스트 3’이다. 이 분야는 기자가 직접 참여 또는 참관한 공연을 대상으로 하였다. 순위가 아닌 세 공연을 주목한 것이다.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4인 공개공연’ 이 공연은 2021년 11월 10일 정선아리랑센터에서 (사)정선아리랑보존회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이 단체는 1970년 전남 광주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수상자들이 중심이 되어 1971년 결성하여 창립 50년을 넘겨 뿌리가 깊은 보존회이다. 강원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아리랑 기능보유자 유영란·김남기·김형조·김길자 4인을 중심으로 전수교육조교 5명, 이수자 13명, 전수장학생 6명, 전체 회원 73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단체가 11월 10일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공개공연’을 하였다. 한 무대에서 4분의 보유자가 각각의 제자들과 함께 전승 종목 긴아라리·엮음아라리·잦은아라리를 선보였다. 보편적으로 불리는 50수를 보유자 분이 연창하고 제자들이 받았다. 대개의 경우 같은 종목의 보유자들은 제자들과 각각의 공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공연은 네 분이 제자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선 것이다. 이를 통해 4명 보유자 각각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제자들의 성향과 가능성을 살필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보유자 활동 51년이란 가장 긴 유영란 보유자와 지난 동계올림픽 개막공연에서 ‘아라리’를 세계에 알린 김남기 보유자, 그리고 부친 김병하에 이어 대를 이은 김길자 보유자가 한 자리에 선 것은 유래가 드문 공연이다. 분명히 강원도무형문화재 제1호 지정 50년 기념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공개공연’은 정선아리랑보존회라는 정체성을 오롯이 보여주는 공연으로, 다른 보존회에 전범을 제시했다고 본다. 도지사도, 도 문화재위원장도, 군수도, 문화원장도, 재단 이사장도 없는 기념공연이었지만, 보존회만이 보여준 최고의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지난 4월 임기를 맡은 김길자 이사장은 "정선아리랑의 진가를 전국의 귀명창들에게 전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네 명의 보유자들로 구성된 무대이다. 앞으로 여건을 마련하여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기대가 크다. 동초의 길을 잇닿다, 심청가 전승공개 발표회 전북 무형문화재 제2호 동초제 심청가 보유자 장문희 명창 전승 공개 발표회다. 11월 28일 우진문화공간에서 5시간에 걸쳐 보유자 장문희 명창과 함께 7인의 제자가 전 바탕을 연창했다. 장문희 명창은 이미 전주소리축제 등의 초청으로 춘향가·심청가·적벽가를 다수 완창한 바 있다. 김연수 법제인 동초제는 1930년대 초 여러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 중 좋은 점만 골라 창시한 유파이다. 오랜 창극 활동과 독자적인 창작기법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이의 막내 계보인 장문희는 천성의 목구성으로 힘이 좋아 청중을 사로잡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 번 발표회는 202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자와 함께하는 완창 발표이다. 첫 무대 ‘심청의 탄생’과 마지막 ‘재회’ 대목은 장문희 명창이 맡았다, ‘곽씨부인 죽음’은 왕시연이, ‘심청의 성장’을 모세진이, ‘개천에 빠진 심봉사’를 박성희가 받았다. 이어서 ‘행선 전야’는 서정민, ‘인당수에 빠진 심청’은 조혜진이, ‘모녀 상봉’ 대목은 김유정이 맡는다. ‘심봉사의 탄식’은 전수장학생 박수현이, 마지막 ‘후일담’은 보유자와 장학생 그리고 7인의 제자들이 함께하였다.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한 정확한 사설에 정교한 너름새와 다양한 부침새로 하여 가사 전달이 분명한 동초제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의 ‘공지적 생략’이 있어 1인 완창보다 20여분 시간이 단축되었으나 판소리의 눈대목소리 같은 박진감이 있었다. 동시에 진정성과 소리꾼으로서의 치열함이 확인 되어 완창무대의 완결성도 확인되었다. 이 전승 공개 발표회의 특징은 스승 장문희의 법제와 그 특징을 객관화하고, 이를 전수, 전승하는 제자 7인의 수용 태도와 성취도를 확인하는 특별함이다. 이는 함께하는 관객에게도 의무적인 유파 발표회라는 지루한 발표회가 아니라 각 제자들의 특장을 토막소리화 하여 박진감 있는 공연이 되게 하였다. 이 발표회는 판소리 보유자 정기 발표회는 물론 다른 종목의 발표회에도 참고할 사례가 될 것이다. 도창 역할은 한 장문희 명창은 "도전이 있어야 성과가 있고, 그래야 후학들에게 ‘잘 했다’라는 선물을 줄 수 있기에 발표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루함 없이 보고, 듣고 함께한 5시간여의 ‘동초의 길을 잇닿다, 심청가 전승공개 발표회’였다. ‘노인요양시설 전통예술프로그램 수행’ 의미있는 국악 활동으로 ‘봉사공연’이란 분야가 있다. 일반적인 공연은 아니나 노인요양 시설 같은 소외 지대에 국악 교육과 체험과 공연성을 갖는 특별한 활동을 말 한다. 이는 노인 대상 국악교육과 국악 공연이 결합된 형태로 전문성을 요한다. 이런 활동을 수향해 온 단체가 세종시 소재 국악교육 단체 ‘한누리국악원’이다. 이 단체의 황정수 대표는 국악교육을 전공했다. 진주교대 국악교육학과 대학원에서 국악교육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석사논문은‘전통놀이 화가투를 활용한 초등 국악기 이해력 향상 프로그램 개발’이다. 초기 감수성이 형성되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국악을 밀착시켜 주기 위해 ‘화가투(花歌鬪)놀이’를 활용한 연구이다. 또한 실기로 민요를 택해 평안북도 무형문화재 4호 평북농요를 이수하기도 했다. 이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국악아, 노올자!’ 기획하고, 지역문화 향유 활동사업 ‘아리랑 한마당’, 아트체인지업 ‘국악으로 즐기는 태교자장가’ 같은 교육 프로그램 등의 기획자이다. 이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는 국악인 역시 국악인 들이다. 방문배는 판소리 , 이은지는 가야금병창, 김성부는 타악, 윤명숙은 민요를 전공했다. 한누리국악원이 행한 주목하는 국악 봉사공연은 ‘노인요양시설 전통예술프로그램 수행’이다. 9월 15일부터 12월 까지 프록램을 수행 한 곳은 ‘공주 원로원’, ‘세종 VIP요양원’, ‘대전 유앤아이’, 대전요양원 네 곳이다. 공연 회수는 30회로 수혜 노인 수는 980여명이다. 각 회는 ‘도입-전개-정리’ 단계로 구분하여 교육과 놀이와 공연형 프로그램이이다. ‘프로그램 수행계획서’에 의하면 ‘악기체험⟶악기 연주⟶병창’, ‘민요공연⟶노래 부르기⟶개사하기’ 같은 순차적 활동으로 이해와 놀이와 공연 성격을 부여했다. 무용으로 ‘꽃춤’, 복놀이로 ‘복주머니를 이용한 퀴즈놀이’, 노래 수업으로 ‘지역별 아리랑 알기’와 ‘아리랑 사설풀이’ 등이 있다. 춘향가의 경우, ‘가야금 병창 춘향가’와 ‘판소리 춘향가’로 구분하여 이해를 도왔다. 황정수 대표는 "국가 지원을 받아 수행한 국악 프로그램이지만 어떤 공연 무대보다 준비와 성의를 다한 활동이었습니다. 국악교육 전공으로 태교음악과 초등교육 프로그램을 공부한 것이 노인 봉사공연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앞으로도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더 즐기는 프로그램 개발에 노력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아리랑 화가투’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국악의 기능과 국악교육을 생각하게 해준 의미있는 봉사공연을 4개월간 수행한 한누리국악원 활동은 보상이 주어질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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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추천 휴일의 시 (58 ): 겨울 (윤동주)겨울 윤동주(1917~1945) 북간도 명동촌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라미 달랑달랑 얼어요 추천인:김병하(전 아라리전수회 회장) 북간도(동북3성) 일대는 이미 한 겨울이다. 이 쯤 회령 명동촌을 가 본 이라면 알 것이다. 얼마나 춥고 스산한 곳인지를. 그러니 조선 풍경을 얼마나 그리워 했을지를. 그런데 처마 밑에 걸린 무청 말린 시래기와 얼어 동그랗게 된 말똥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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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정선아리랑 가사짓기 공모전’ 심사(사)정선아리랑보존회 김길자 이사장이 주체하는 제6회 ‘정선아리랑 가사짓기 공모전’ 심사를 마쳤다. 심사는 시인 신승근, 정선신문 권혜경 편집국장, 아리랑전승자협의회 정은하 회장,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을 위촉하였다. 앞의 두 분은 정선 지역의 정서를 반영한 가사를 발굴에 주목하였고, 외지 분을 위촉한 것은 다른 지역과의 변별과 민요 본래의 전승 원리를 주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심사 대상작은 83명(일반부 70명, 학생부 13명)이 응모한 900여 수이다. 응모 가사 1인당 4수를 선정, 심사를 하였다. 보존회 사무국 소재의 정선아리랑전수회관에서 5시간 여에 걸쳐 많은 기대 속에서 이뤄졌다. 주체 측에 의하면 이전의 응모 인원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나 응모자 개인 작품 양과 주제면에서는 크게 변별이 된다고 전한다. 개인 창작 수량에서는 대체적으로 10여수 정도였는데, 이번 응모자 중에는 200여수, 40여수, 그리고 20여수 응모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내용에서는 80퍼센트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코로나19에 대한 원망과 종식을 바라는 작품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전자는 ‘마음먹고 창작’했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다. 그리고 아라리가 다른 아리랑 의 원류라거나 중요하다는 전승의지를 반영한 가사는 보존회 회원들의 의식이 반영된 듯하다고도 전했다. 이런 현상은 응모자 범위를 확대한 결과로 보아 긍정적이다. 그동안 5회까지는 보존회 회원 중심이었는데, 금년에는 범위를 회원은 물론 정선군민으로 확대했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고 본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에 대한 사무국에서는 심사결과를 보고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안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 보유자 故 김병하선생의 소시적 회고에 의하면 "아라리는 찍어다 붙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만큼 아라리는 정선인들에게 ‘나의 노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변해 즐길거리가 다양해졌고, 겨울을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없어졌고, 핵가족화가 이뤄져 가족전승이 거의 단절된 상태라서 스스로 지어서 부를 필요가 줄어든 상황이다. 이런 시대상을 우려하여 보존회는 대체안의 하나로 2013년부터 ‘정선아리랑 가사짓기 공모’(창작가자 모집)를 하게 되었다. 메년 응모작 수가 늘어나고 있고, 질적으로도 향상되고 있다고 한다. 심사위원 정은하선생은 "잦은 아라리 가사 수가 적은 편인데, 긴아라리 가사 수준에 매우 미달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음보를 맞추는 것과 서사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쉽지 않지만 전선아리랑의 독특한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응모 조건에 배점을 더 하여 응모를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제6회 심사결과 발표와 시상식은 11월 중순쯤이고, 가사집 발간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정선아리랑 공모전을 통해 만들어진 가사는 정선아리랑 가사집에 2050수가 수록되어 있다. 오디오북으로 제작하여 기록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 한편 김길자 이사장은 전 김형조 이사장과 동석한 자리에서 보존회의 활동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보유자들을 통한 정선아리랑 진수를 외지에 알리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 등에서는 원로 보유자들만의 소리를 듣는 깊이 있는 공연을 원하는 곳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계획이 이루어져 원로들의 익은 소리를 서울에서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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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br> ‘2005’의 아리랑<10> 강원도의 아리랑 전승 실태지금까지 7회에 걸쳐 강원도의 아리랑 상황을 ‘지역별 아리랑 전승실태 조사보고서’를 통해 살펴왔다. 강원도의 아리랑은 전국 7개 아리랑 권역 중 중요도나 전승 범위의 광역성에서 단연 주목이 된다. 그런 만큼 다양한 논점을 살피게 되었다. 이번 회에서는 아라리, 엮음아라리, 자진아라리의 전승 범위를 2005년 상황에서 검토하기로 한다. "아라리의 전수자가 강원도의 거의 전역에 풍부하게 존재해 온 것은 이 노래가 이 지역 민중들의 기층적 삶에 이처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라리는 향토민요로서 강원도의 기층문화로 뿌리 깊고 넓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라리는 문화적 뿌리가 튼튼한 노래이기에, 민요생태학적 측면에서 볼때 자연스런 전승이 단절된 오늘의 상황 아래에서도 아리랑 전수자들이 아직 도처에 적지 않게 존재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인용문은 2003년 발행된 김시업 편 ‘정선의 아라리’ 같은 조사자료에서 확인되는 전승 상황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민요의 전승 조건이 상실된 상황이지만 강원도의 아리랑은 다른 지역과 달리 전승자가 적지 않게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아라리가 지역민들의 기층적 삶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아라리는 문화적 뿌리가 튼튼한 노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라리는 긴아라리, 엮음아라리, 자진아라리, 강원도의 아리랑을 말한다. 이들은 인위적 조건에서 전승되기도 한다.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유자들을 통한 교육 전수를 말한다. 긴아라리와 엮음아라리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아리랑’으로, 자진아라리는 ‘강원도 무형문화제 제5호 학산오독떼기’ 종목에서 체계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전자는 보유자 4명, 이수자 6명, 전수장학생 14명에 의한 정선아리랑보존회로 조직되었고, 후자는 보유자 3명, 이수자 3명, 전수장학생 4명, 보존회 회원 40여명이 학산오독떼기보존회를 결성하여 전승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보존회 회원 중에는 자연스럽게 체득한 이들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자연적 체득이란 전수교육과 같은 인위적 전승이 아니라 가족공동체 또는 마을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을 말한다. 민속의 가장 바람직한 전승 형태이다. 보유자 김길자의 경우 가정에서 할머니 정옥선과 부친 김병하(2007년 작고)로부터 자연스럽게 소리를 익힌 사실이 그 한 예이다. 이러함에서 정선지역이 비교적 자연적 전승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정선이 우리나라 아리랑의 전승 중심지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 두 지역 보존회는 전수교육 중심의 정기적 축제, 공개 공연, 창극공연, 경창대회, 시장공연, 전수교육, 그리고 가사 짓기 같은 활동을 통해 전승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특히 괄목할 것은 초등학교 교육에서의 성과와 경창대회 정례화와 타지역 경연자를 참여시켜 교류를 확대시켜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원도 아리랑의 원심력과 구심력을 유지시키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문화재청 발간 ‘지역별 아리랑 전승실태 조사보고서’ 강원도의 아리랑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즉, 아라리, 엮음아라리, 자진아라리는 아리랑문화의 원형으로 보호할 필요성 또한 크게 요구되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강원도의 경우는 전수자 일부가 자연 체득자여서 인적 자원이 두텁다고 하였다. 이와 함께 전체 아리랑사의 위상을 강조하였다. "강원도 향토민요 아리랑은 아리랑 노래문화의 모태이면서, 아리랑 노래문화를 성장시킨 자원아라는 면에서 그 문화사적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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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정선아라리 명가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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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br> ‘2005’의 아리랑<6><br>‘산의 노래’에서 ‘흙의 노래’로‘강원도의 아리랑 존재양상과 전승실태’를 살펴왔다. 지난 회에서는 오늘의 강원도 아리랑에서 후렴이 어떤 형식으로 불리고 있는지, 그런 형식은 언제부터 불리어 온 것인지를 살폈다. 실상을 분석하면 ‘토속민요 아리랑은 후렴을 거의 부르지 않는다’라는 결론이다. 이에 대해 정선군 비봉산에 세워진 ‘정선아리랑비’ 후면의 기록을 들어 ‘경복궁 중수 이후’라고 한 기록을 대비했다. 이번 회는 보고서에서 "이 후렴 문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하며 제시한 아리랑의 성격변화 배경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사실 후렴 문제는 토속민요 아리랑에서만이 아니라 통속민요 아리랑이나 타 지역 아리랑에서도 논쟁적인 대상이다. 왜냐하면 사설면에서 이 후렴이 탈맥락화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설 내용을 분절시켜 장면전환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설의 문학적 측면만을 본 결과인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후렴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배경으로 강원도의 아리랑이 ‘산간의 노래’에서 ‘들의 노래’로 진출하여 선후창으로 불려지면서 후렴을 규칙적으로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이미 1987년 김연갑 선생이 ‘아리랑 선행연구 검토와 메아리 원형 가능성 고찰’이란 논문에서 ‘산의 노래’와 ‘흙의 노래’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는데, 이번 회에서는 토속민요 아리랑의 성격변화와 후렴의 관점에서 살피기로 한다. "후렴을 붙여 부르지 않는 것은 산간 노래로서의 양상이며, 후렴을 넣어 부르는 것은 들노래로서의 양상인 것이다.” ‘산간노래’와 ‘들노래’, 그리고 후렴의 여부를 현재 강원도의 아리랑은 후렴을 붙여 부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공존이란 상황으로 이원화하여 설명하는 대목에서 규정한 말이다. 여기에는 ‘산간노래’에서 ‘들노래’로의 진출을 생태적 환경변화의 결과로 보고 이 변화가 가창방식을 바꾸었다고 하였다. 후렴의 여부는 가창방식의 변화 결과물이라고 한 것이다. 이를 따른다면 ‘산간의 아리랑’이 ‘들의 아리랑’으로 진출하는 시점이 곧 가창 방식의 변화 시점이고 후렴의 형성시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산간’과 ‘들’의 개념을 일반화하기는 난점이 있다. 말하자면 산간 내에도 들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산간은 임산물 체취의 대상이고 들은 논농사 중심의 대상으로 논의해 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시 논농사의 경우 볍씨를 논에 직접 뿌리는 직파법(直播法)과 못자리에서 키워 줄모로 옮겨 심는 이식 재배방식인 이양법(移秧法)의 문제로 확대되어 그 시점이 갈라지기 때문이다. 이양법의 14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금지령으로 잠복되었다가 17세기 후반 관계수로의 발달로 일반화 되었다. 결국 이런 논의로 확대되면 강원도에서의 아리랑 후렴은 경복궁 중수 이후 외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강원도 내에서의 생태적 환경변화로 발생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논점을 좁히면 아리랑에서의 후렴 형성은 ‘산간노래’에서 ‘들노래’로의 진출 결과냐 아니면 경복궁 중수를 계기로 토속아리랑에서 통속아리랑이 파생된 결과이냐의 문제이다. 전자는 생태적 환경변화 결과이고, 후자는 ‘정선아리랑비’의 후면 기록대로 외지 유입 결과인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전자는 ‘자연발생설’이고, 후자는 ‘외부유입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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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소리 천년의 노래 '정선 아리랑'[일 시] 2005년 03월 16일 오후 7:30 ~ 9:00 [주 최] 국악신문사, 02-922-1411 [장 소] 국립국악원우면당 신나라와 아리랑연합회가 공동기획으로 발매된 바 있는 정선 토박이 김연수 가족 3대의 정선아리랑 초청공연 김순녀 1978. 2. 10. 정선여고 졸업 1979. 김병하 사사 1980. 4. 6 KBS 라디오 민요백일장 최우수상 수상(정선아리랑) 1981. 8. 20 김뻑국 예술단 입단 1981. 8. 20 (사)한국국악협회 회원 1985. 10. 6 제2회 전국민요경창대회 대상 대통령상 수상 1987. 8. 14 독립기념관 준공 전야제 MBC 출연 1988. 5. 12 제4회 세계적십자의 날 기념공연 1988. 10. 3 MBC, KBS 합동방송 88올림픽 메달선수 축하공연 1989. 4. 28 한·미 연합야전군 사령부 축하공연 1991. 8. 14 8·15 광복기념 재일교포를 위한 전국순회공연 1992. 2. 4 요코하마, 나고야, 오사카, 히로시마 재일교포 위문공연 1992. 대한민국 육·해·공군 문선단공연 및 KBS 위문열차 출연 3년 1992. 10. 18 SBS 후원 제1회 할아버지, 할머니 합동 고희잔치 (장충체육관) 출연 1993. 8. 7 93‘ 대전엑스포 대공연장 및 대전관 3개월 공연 1994. 94‘ 국악의해 국립극장 공연 1997. 3. 1 김뻑국 예술단 주최 만담 보존회 창설기념공연 (국립극장) 1998. 세종문화회관 국악공연 2000. 10. 14 중국 심양시 조선족 동포 위문공연 8.1극장 2002. 5. 18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공연 2002. 6. 25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공연 2003. 7. 18 운현궁 명인 명창의 밤 공연 2004. 4. 25 KBS 국악 한마당 출연 2004. 8. 15 삶의소리 천년의 노래 정선아리랑(신나라 뮤직 CD 8매 )취입 현 재 아카데미 정선아리랑 연구회 운영 1 _ 한오백년 2 _ 긴아라리 3 _ 자진아라리 4 _ 엮음아라리 _우정출연:정명자(춤의소리) 5 _ 강원도아리랑 6 _ 김옥심제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 아라리와 춤, 경기민요, 팔도아리랑 일반적으로 아리랑을 말 할 때는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서울·경기의 본조아리랑(경 토리), 전라도의 진도아리랑(육자백이 토리), 경상도의 밀양아리랑(경상도메나리 토리)을 일러 우리나라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그리 마뜩한 규정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타의 아리랑과 정선아리랑과는 동류의 하나로 병렬시키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 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이유는 소위 인지도(認知度) 또는 통속성을 제외한 어떤 경우에도 정선아리랑이 절대적인 비교 우위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선 형성 시기를 들어 보면, 밀양아리랑이 1920년대 초에, 본조아리랑이 1920년대 중반에, 진도아리랑이 1930년대 초에서나 오늘의 모습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하다. 나아가 전승체계의 견고성과 사설(4천여수)의 적층현상과 전승지의 광역성, 특히 아직도 구비문학적 현장성과 전승력이 유지되어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 노래로 하여 일체감과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세 가지 아리랑 모두는 정선아리랑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주종 또는 선후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딱히 음악학적인 결론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는 무리가 없는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정선아리랑은 모든 ‘아리랑의 아리랑’인 셈이다. 다음은 이를 계보화 한 것이다. 뫼‘아리’ ∥ 아라리 ∥ 1.강원(강릉)자진아라리(북한강계) - 강원도(인제)아리랑 2.강원(정선)긴아라리(남한강계) - 중원아라성 - 한오백년 - 강원(정선)엮음아라리 ∥ 3. 경기긴아리랑 4. 경기자진아리랑(H·B. 헐버트·이상준 채보) ∥ 주제가‘아리랑’→본조아리랑(신·서울·경기아리랑) 정선군이 17판을 거듭 펴낸《정선아리랑》과 최근 성균관대학교 김시업교수가 펴낸 조사보고서 《정선의 아라리》에 수록된 사설 3천여수에는 여타 아리랑 사설의 많은 부분이 동일형 또는 변이형으로 나타나고 있어 사설면에서도 정선아리랑은 ‘모천(母川)의 노래’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정선아리랑이 모든 대상을 수용하는 ‘열린 소리’로 시공의 제한 없이 뻗어가고 올 수 있게 한 것도 여기에 기인 한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때문에 가장 민중적이고 생활적인 소리인 정선아리랑에 수심(愁心)과 산수(山水)편으로 분류 할 만큼 유형화 되었다거나 다른 어떤 서정민요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한문투 사설이 하나의 유형으로 존재한다든가, 고려말의 역성혁명 같은 역사적 사실과 그에 의해 출현한 의 충절혼이 사설화 되어있는 연유도 이에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 역사(歷史) 우리는 아리랑을 말 하면서 은연중에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해 오고 있다. 그 하나는 되도록 오랜 유래를 지닌 노래라고 말하려는 성향이고, 또 하나는 비장감을 부각시켜 민족사의 아픔과 함께 하여온 노래임을 말하려는 성향 이 그것이다. 전자는 기원설의 역사주의(歷史主義)라고 말 할 수 있고, 후자는 비장지향성(悲壯指向性) 또는 역사의 원상의식(原傷意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정서는 곧 정선민들이 아리랑(아라리)의 연원을 고려유신 에 기대어 오고, 그 어원(語源)을 ‘누가 내 마음을 알리오’나 ‘마음이 아리고 쓰리다’(疼痛說)라고 인식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정선군에서 공시(公示)하고 있는 역사는 역시 려말선초의 고려유신들, 특히 정선 서운산(瑞雲山)에 은거했던 이들과의 관련 전설에 근거한다. 즉, “처음 불리어지기 시작된 것은-(중략)- 불사이군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송도에서 은신하다가 정선으로 옮기어 일생동안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면서 지난날에 모시던 임금님을 사모하고 충절을 맹세하며 입지시절의 회상과 가족과 고향의 그리움에 곁들여 고난을 겪어야 하는 심정을 읊은 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원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 때의 선비들은 이러한 비통한 심정을 한시로 지어 율창으로 부르던 것을 지방의 선비들이 듣고 한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풀이하여 감정을 살려 부른 것이 오늘에 전하여 지고 있는 아리랑의 가락”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정선인들이 자부심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눈이 올라나···”와 같은 연관되는 사설을 첫 소리로 앞세워 부르고, 한문투 사설들을 수용하는 특징을 보이게 되었다. 굳이 말 한다면 이는 전설(傳說)이다. 그래서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는 시원(始原)을 이루었다기 보다는 이미 있어온 소리에 그들의 회한(悔恨)이 사설로 수용되어 공동체에 연대감을 촉발시켜 전승에 기여했을 수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 어원(語源) 강원도 음악 문법의 기층성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메나리’나 ‘아라리’의 존재와 ‘메나리토리’란 말에서 이 대두되었다. 이 설은 산(山)의 우리말 ‘뫼’와 ‘소리’ 또는 ‘노래’의 의미인 ‘아리’가 결합한 것으로 산악인의 원초성을 지닌 신호 또는 언어이면서 또한 음악인 산소리 ‘메+아리’가 ‘아리’만 확대되어 3음절의 ‘아라리’로 되고, 이에서 다시 ‘ㅇ’음이 첨가되어 ‘아리랑’으로 확대·변화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정선 지역민들이 외견상으로는 표출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수용하고 있다고 본다. 은 앞에서 살핀 기원설의 하나인 과 상통되는 설이다. 이는 정선 지역에서 유일하게 공시(公示)된 설인데, 1977년 정선읍 비봉산에 세워진 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구체화 되어 있다. 즉 “본래는 아라리라고 일컫던 것이 세월이 흘러감에 어느새 보편적인「아리랑」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으니, 아리랑이란 누가 나의 처지와 심정을「알리」에서 연유된 듯 하더라”라고 되어 있고, 교육자료 “원로들은 아리랑이 아니라 아라리라고 강조한다. ‘누가 나의 이 억울한 심정을 알리오, 알아주소서.’라는 뜻”이라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으로 변해왔음을 말 한 것이다. 이는 여말선초의 변혁기 역성혁명에 항거했던 절의파 구성원을 총칭하는 의 처지를 염두에 둔 주장이기도 하다. 사실 “누가 내 마음을 알리오”라며 비통하게 애소 할 그릅은 우리 역사에서 이들을 제외 하고는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본다면 고려말 상황이 지역 문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이들이 남긴 시문, 특히 누구보다도 정선에 연고가 깊은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시에서 ‘누가 알리오’라는 뜻의 ‘수지’(誰知)를 쓰는 시가 유독 많다는 사실에서 주목할 만한 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다면 이 두 가지 어원설은 어문학적인 논의를 떠나 정서적으로는 매유 공감하는 바이고, 결과적으로는 정선아리랑을 이해하는데 유용하다고 보게 된다. ◎ 10대 특징 ① 창곡 중심이 아니라 사설 중심이다. 창곡은 원초성을 유지, 변화가 거의 없고 사설은 시대마다 확대되어 뚜렷한 적층현상을 보인다. 창에 대한 부담이 적어 자신의 심사를 표출하려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데에 안성마춤이기 때문이다. ② 단일 민요로는 물론, 전 구비문학 자료 중에 사설이 가장 방대하다. ③ 초(超)기능적이다. 기본적으로 내면을 다스리고 표출하려는, 그래서 노래 자체를 즐기려는 ‘놀이적 성격’이 내재해 있음은 물론 지극히 생활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④ 음악적 형태나 사설의 구조상 원초성과 토착성이 유지되어 있다. ⑤ 한문투(漢詩形) 사설이 유형형화 되어 있다. 이는 과 의 한 배경으로 볼 수 있고, 이로서 ‘정선’아라리로 특화 된다. ⑥ 구비문학적 현장성과 전승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거의 유일한 민속음악이다. 또한 음악 공동체가 아직 존속되어있어 정체성과 통합성이 유지 되고 있다. 그래서 지역민들이 정선아라리로 일체감과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 ⑦ 전체적인 정조는 애잔함과 소박함을 특징으로 한다. 진도아리랑이 흥청거림과 신명성이, 밀양아리랑이 투박함과 남성적임이 특징인 것과 비교 되는 점이다. ⑧ 토속민요로 전승지가 가장 넓다. 강원도 전역과 경상·충청일부 그리고 경기 한강수계가 그 전승지이다. ⑨ 군(郡) 차원에서 전수·전승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군의 상징으로 까지 삼아 보존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을 통한 대중음악과의 접촉으로 토속민요의 전승체계가 급격히 위축되어 가는 현실에서 바람직한 방안일 수 있다. ⑩ 40여년 간 군 차원의 보존·발굴 상황이 축척된 가집(歌集)을 갖고 있다. 바로 1968년 이후 17판을 거듭해 온《정선아리랑》인데, 공식적으로 증보·축차 되고 있는 것으로는 독보적인 가집이다. ◎ 가창 양식 정선아리랑이 본질적으로는 사설 중심이라는 것은 가창양식에서도 확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비교적 느리게 부르는 ‘긴소리’, 빠르게 부르는 ‘잦은소리’, 그리고 ‘엮음소리’는 성음의 세련미나 예능의 유무에 의해 변조(變調) 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사설 표출 능력과 그 효율성을 위해 확대된 것이라고 본다. 이는 1960년대 강릉·삼척·정선 등지에서 녹음된 자료를 통해 볼 때 ‘레·도·라·미·솔’의 메나리토리 5음계와 3소박 6박자라는 구성상의 변화는 거의 없고, 사설의 확대 폭이 훨씬 크고, 사설의 적층현상으로 지역적 차이가 변별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이 된다. 딱히 이러한 정선아리랑의 속성 때문만은 아니지만 정선아리랑은 다른 민요처럼 서양 기보(記譜)로 규정화 하기는 쉽지가 않다. ◎ 아라리 긴소리-이는 일반적으로 불려지는 것으로 창자마다 차이가 있으나 세마치장단으로 악절과 마디와 같은 기본 틀에서는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를 오선보화 하면 9/8박자이다. 잦은소리-긴소리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긴소리’에 비해 빠르고 물박장단이나 젓가락장단에 어울리고, 드물게는 후렴을 절마다 넣어 선후창으로 부르기도 한다. 독립적으로 불려지기 보다는 ‘엮음소리’와 같이 ‘긴소리’에 이어 불려진다. 엮음소리-긴소리가 불려지는 중간에 또는 끝에 한 두 편이 불려진다. 2박·3박·4박의 불규칙한 박자로 역어나가다가 뒷부분을 늘어트려 맺는다. 그러나 “시간적인 질서와 음악적인 질서에 규제를 받지 않고 거의 동일한 음으로 단조롭게 이어”가다 ‘긴소리’로 되돌아오는 형식이다. 이는 사설측면에서는 확장현상이고, 음악측면에서는 변조형태 이다. 창민요에서 ‘복는형’ 또는 ‘사설형’이라고도 하는데. 3·4조 내지 4·4조의 율조에 맞춰 빠르게 부르는데 맞게 되었다. 그래서 엮음형으로의 변화는 해학성과 율조성이 표현기법상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사설의 확장 부분과 악곡의 엮음 부분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연행상황은 주로 호기 있고 개방적인 남자들이 부르는 예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일부 창민요에서 볼 수 있는 ‘잦은’과는 다르게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외지의 전문 소리꾼에 의해 변조된 것으로 주장하나 사설의 확장을 정선아리랑의 속성으로 보는 측면에서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후렴-정선아리랑에서의 후렴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경복궁 중수(1865~1872) 이후에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이나 본래적으로 덧붙임(addition)의 기능일 뿐이라는 논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60년대 녹음된 자료들에서 추정되는 바에 따르면 어떤 시점에선가 하나의 사설(각편)로 쓰이다가 1930년대 쯤 아리랑의 전국적인 두각으로 영향을 받아 후렴으로 정착 되었다고 보게 된다. 그 근거는 현지민의 증언에서 찾을 수 있고, 후렴의 악곡이 본사의 악곡과 동일하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 한오백년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불복하여 정선·원주·여주·삼척 일대에 은거한 목은 이 색을 위시한 고려유신들이, 고려(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간 34대)가 5백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망하게 한 이성계를 원망하여 지은 시에 연유했다는 전설이 담긴 소리이다. 이것이 일제시대 때 편곡되어 신민요로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40년대에는 유행가로 불리고, 70년대 와서는 가요로 불려지는 소리이다. 전문 소리꾼에 의해 불려지는 것은 장식음이 많고 고음으로 질러내는 기교가 요구되는 소리로 메나리 선법이 짙다. 곡명은 후렴구에서 유래하며 정선 지역 설화에서는 고려유신들이 고려가 5백년을 채우지 못하고 망 한 것을 표현 한 것이라고 한다. 곡 전체의 분위기는 애처롭다. 미·라·도의 주요 음과 솔·레의 경과음으로 구성되며, 미로 시작하여 라로 끝난다. 장단은 느린 중모리, 전체적으로는 낮은 음으로 부르며, 특히 낮은 음역에서 시작하는 후렴구와 한 옥타브 높은 음역에서 시작하는 본 마루의 대비가 이 민요의 매력이다. 다른 아리랑과 같이 후렴을 먼저 부른다. ◎ 강원도아리랑 원래는 언모리와 비슷한 장단에 메나리토리로 된 강원도 자진아리랑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일제시대 음반화 하면서 경토리로 되어 토속성을 상실, 통속민요가 되었다. 1920년대 초부터 발매된 S·P 음반 중에서도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이상준의 1921년《신찬속곡집》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1900년대 초에 잡가로 널리 불렸음을 추정케 한다. 선율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주고 가사에 나타나는 몇몇 단어는 강렬한 이미지로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려주기도 한다.(한명희) 다음의 사설은 이옥화가 부른 소리의 사설로 리갈(C198)에 수록된 것이다. 각 마루마다 후렴을 달리하고 있다. 뒤의 사설은 소리꾼들에 의해 전승되는 사설이다. ◎ s김옥심제 정선아리랑 강원도 민요 중 백미로 꼽히며 예술작품으로 까지 평가를 받는 아리랑이다.(이혜구·한만영) 1948년 처음 김옥심에 의해 불려지게 된 것으로 알려져 오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948년 강원도 순회공여 중 정선지역 공연에서 정선아라리를 듣고, 이창배가 이를 ‘무대소리’ 엮어보자며 구성해서, 그 해 김옥심에게 부르게 했다(한성자 증언)는 설이고, 또 하나는 김옥심이 구성하여 이창배 앞에서 불러보자 “그 소리 괜잖구먼”이라고 하여, 그 뒤로 김옥심이 무대에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이춘희·이호연·김영임도 유사하게 이해하고 있다.) 어쨌든 이 소리는 강원도에서 불려진 것이 서울로 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해방 후 이창배와 김옥심에 의해 불려진 것만은 분명하다. 첫 부분은 엮음으로 사설을 주어 섬기고, 둘째 부분은 느린 한배로 나오는데, 여기부터 세마치 장단을 근간으로 늘였다 줄였다 한다. 셋째 부분은 후렴구로 대개 합창으로 받지 않고 독창으로 받는 특징이 있다. 전승 사설은 담음 세 가지이나 문헌 사설은 상당히 많다. 또한 정선의 아리리 중 엮음의 앞 사설은 모두 이 아리랑의 사설로 전환되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이 아리랑은 긴아리랑과 함께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경기소리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여 일반화 되지 못해 전승이 단절 위기에 있다. 주목해야 할 상황이다. ‘후렴-사설-소리’로 구성되었고, 한오백년과 함께 주요음과 꾸밈음이 같다. 이 두 가지는 음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특히 설화상으로도 정선아리랑에서 분화되었음이 분명하여 이번에 김순녀를 통해 수록했다. 특히 한오백년은 정선아리랑 사설이지만 한문투여서 잘 불리지 않는 사설들을 가락에 얹었다. ◎ 김순녀의 전승체계 세계가 우리 음악을 주목하는 이유의 하나는 민속음악의 견고한 전승체계와 그것이 현장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세계 유네스코가 을 제정한 것이나 판소리를 으로 선정한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리랑, 특히 정선아리랑의 전승체계는 우리 스스로에게나 세계에서 주묵 할만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음반의 주안점을 바로 이 같은 정선아리랑의 전승체계를 반영하는 것과 문헌 속에만 있는 사설을 되살려 내는데 두게 되었다. 이는 정선아리랑의 중요한 특징이며 속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전수·전승체계를 관찰 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정선군 정선읍 덕송2리(송오리)에서 5대째 살아오고 있는 김연수 가계를 주목하게 되었다. 이 가계는 동네 소리꾼이셨던 남효자 할머니가 88년 작고하기 전까지 아들(김연수)과 딸(김옥자)과 손녀 넷에게 자연스럽게 소리를 전해주어 정서적 기반을 형성케 했고, 3대(1대 4, 2대 4, 3대, 2명)의 소리 층위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장녀 순녀와 차녀 순덕 자매가 20대에 여러 경창대회에서 수상을 할 만큼 재능을 갖고 있고 언니는 서울에서, 동생은 고향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 적격으로 보게 되었다. 특히 언니는 유일한 강원도 출신 국악인으로 경기소리제로, 동생은 고향에서 전통적인 메나리제로 소리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순녀는 양식적 경계가 희박 해져가는 시대적 상황에서 ‘퓨젼’ 또는 ‘크로스오버’를 대비해야 한다고 볼 때, 정체성을 갖고 경기소리제로 서울에서 정선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사실은 매우 이채로웠다. 해방직후 김옥심이 정선아리랑을 경기소리제로 불러 “민요라기보다는 예술음악”(이혜구)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정선아리랑의 성가를 높였듯이 ‘제2의 김옥심’으로 성장과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보배롭다 하겠다. 그리고 동생 순덕은 사투리를 유지하고 기능에 것 넘지 않는 평균적인 성음의 소유로 교수자로 적합하며, 음량이 탁월하여 장시간의 사설치레가 가능하다는 점이 돋보였다. 이번 음반에서는 가족 내 세대별 전승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3차에 걸쳐 가족 10인을 대상으로 녹음을 했다. 이 중에 두 자매를 제외하고는 현지에서 단 한 차례 자연스럽게 녹음을 하여 즐겨 부르는 사설과 꾸밈음의 차이 그리고 같은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가를 확인 하고자 했다. 그런데 어머니(순녀 중심)와 이모보다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딸 넷 모두가 나름의 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이 가계의 기질은 모계적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이 가계를 중심으로 한 전승 체계는 10년 단위로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매를 중심으로 한 김연수 가계(家系)는 매우 이채롭다. 남효자(할머니·1899~1988) ↓ 김연수(71) + 전인식(74) 옥자(75) ↓ 귀봉(64) 순녀 순덕 + 김동수 순이 ↓ 순여 상근 상아 ◎ 김순녀(순영) 깁병하(예능보유자)·김진환(김뻑꾹예술단장)· 안비취(경기명창) 사사 1978년 정선여고 졸업 1980년 KBS 민요백일장 최우수상 수상(정선아리랑) 1981년 서울로 이주, 입단, 국악협회 정회원 1985년 제2회 민요경창대회 대통령상 수상(정선아리랑) 2002년 월드컵 기념 공연 출연 ◎ 사설의 주요 내용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창밖은 삼경인데 보슬비가 오고요/ 우리둘의 먹은마음은 두사람만이 안다 정선아리랑에서 ‘바로 그 것’으로 인식되어 불려지는 대표적인 사설이 공동체의 생활 경험과는 동떨어진 첫 번째 사설이다. 정선아리랑 ‘제 일절’로 지칭 할만한데, 어떤 노래에서든 제 일절로 불려지는 데는 그 나름의 배경이 있다고 본다. 이는 고려말 이성계 중심의 역성혁명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일상의 체험보다 중요하게 받아드린 특별한 계기에서 연유 한 것이다. 이 같은 사설은 전체적으로 소수이지만 정선아리랑의 정체성, 역사와 어원을 파악하는 데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사설들이다. 이 의 일부를 김순녀가 부른 에서 소리화 했다. *한치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님에맛만 같다면/ 올같은 흉년에도 봄살아 나지 *니나 내나 한번 여차 죽어지면 겉매끼 일곱매끼 속매끼 일곱매끼 이칠이 십사 열네 매끼 찔끈 짤끈 꽁꽁묶어 초롱불아 불밝혀라/ 상두꾼아 발맞춰라 어하넘차 떠들러매고 북만 산천에가 폭삭 썩을 인생들 남듣기 싫은 소리는 부디 하지 맙시다 정선아리랑을 ‘삶의 소리’라고 말하는 배경이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사를 노래하는 사설이 거의 전부라고 할 만큼 많고 내용상으로도 비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애와 고부간의 갈등 같은 가족 관계에서부터 산간농가의 의식주와 관련한 소박한 일상사 까지 다양한 화자에 의해 표출된다. 특히 산간민들만의 화전생활상의 궁핍상과 아무리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곤두래와 딱주기 산나물로 보리고개를 넘겼던 사연 등 산속(山俗)이 그대로 노래되고 있다. 그런데 정선민들은 이러한 곤궁한 생활을 결코 부정하거나 도피하려 하지 않는 긍정적인 심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선아리랑을 ‘사랑의 노래’라고 하기도 한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 주게/ 싸리골 올동 박이 다떨어 진다 *정선읍내 물래방아는 사시장철 물살을 안고 빙글빙글 도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줄모르나 남녀간의 사랑과 질시 그리고 봉건시대의 악폐로 꼽히는 조혼 문제, 이로 인한 성적 갈등도 희화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주로 여성이 화자일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아우라지 처녀 사연의 사설은 산간 처녀 총각의 애뜻한 정한을 담고 있다. 또한 딱따구리의 강한 부리를 대비하여 조로(早老)한 남편의 성적 무능을 나무라는 우의적인 사설도 원망이기 보다는 간절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때 여기에 포함된다. 이점에서 같은 성애를 그렸다 해도 진도아리랑의 대담하고 질박농탕한 성애의 묘사와는 다른 것이다. *이웃집은 다문다문 山은 울울창창/ 山水좋고 人心좋아서 무릉도원일세 *몰운대 방석에는 신선이 놀던 곳이요/ 층대 밑에 맑은 폭포 금상첨화 이루네 생활 주변의 자연경관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사설들인데, 기암절벽·약수·꽃 등을 그린 것으로 극소수이지만 과 중복되기도 한다. 이는 공동체의 체험에서 그려진 것이기 보다는 외부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것이라고 본다. 정선지역민들에게 있어서 주변 자연물은 오히려 생활의 장애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선에서 ‘무릉도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만큼 척박한 사정임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참고문헌과 각주 생략) *정선사십리 발구덕십리에 삼산 한치인데/ 의병난리가 났을때도 피난지로다 *사발그릇이 깨어지면은 두 세조각이 나는데/ 38선이 깨어지면은 한덩이로 뭉친다. 내용상으로는 고려말 격변의 상황으로부터 근대사 까지, 특히 일제강점기 저항적 의식이 표출된 사설들을 말 한다. 아마도 단일 민요에서 우리의 전 역사를 노래한 경우는, 그것도 거의 저항적인 의식으로 노래되기는 정선아리랑이 유일하다고 본다. 이 속성 역시 정선아리랑의 정체성의 한 단면인데, 려말선초(麗末鮮初) 격변의 역사상황을 각별하게 받아드린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위의 첫 번째 사설은 구한말 의병전쟁의 한 거점이 정선이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사설은 남북 분단상을 생활어로 표출한 것이다. 이렇게 정선아리랑은 국가적 상황을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로 표출, 관념이 아닌 체험으로 구체화 하고 있다. 그래서 정선아리랑을 ‘역사의 노래’라고 말하게 된다. 이번 김순녀의 발표를 통해 모든 아리랑의 시원이 정선아리랑에 있고, 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경기제정선아리랑이 정선아리랑의 전 바탕에 함께 있는 것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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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노래 삶의소리 김순녀의 정선아리리지난 9월에 정선아리랑이 토박이 3대 가족 10인에 의해 8장짜리 CD로 발매 되었다는 뉴스가 여러 메스콤의 화제가 됐다. 2003년 5월부터 2004년 8월 까지 신나라와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가 공동기획하고 신나라가 발매한 이 음반은 우리나라 음반사에서도 단일 소리로 가장 방대한 음반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특히 긴아라리는 물론 그 동안 정선아리랑의 한 지류인 ‘자즌아라리·엮음아라리·한오백년 · 경기제(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을 모두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됐으며 국악신문 한켠에도 소식을 담았다. 그 음반의 중심이 됐던 김순녀 명창을 국악신문에서 초대하여 오는 3월 16일 오후 7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올린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영원한 노래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 배달의 겨레는 아리랑으로 통합니다. 아리랑만 있으면 같은 겨레임을 알아보고 서로를 껴안을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를 비롯해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겨레를 아리랑을 부르면서 아픔과 울분을 달랬습니다. 이렇듯... 저희 가족도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아리라 가락에 삶의 애환을 담아 왔으며, 늘 일상 생활 속에서 아라리 가락을 흥얼거리는 할머니를 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도 아라리를 생활화하며 살아오셨고 자연스럽게 형제 자매들도 따라 부르게 되었으며 조카들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가족은 4대째 자연스럽게 소리의 맥을 이을 수 있었다”는 김순녀 씨, 정선에 사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아라리 한대목을 다 부르줄 알죠 그러나 저희 가족이 아리리를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부르게 된 동기를 할머니(남효자 88년 작고)가 저희 집안으로 시집을 오면서 부터라고 한다. 김순녀 씨의 할머니는 다섯 살 때부터 아라리를 부르셨다고 한다. 외증조 할아버지가 정선읍내에서 여인숙을 운영했고 장날이면 많은 사람이 모이는데 할머니는 이런 장날에 어김없이 아라리를 불렀고 이를 본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소리를 너무 잘한다며 용돈도 많이 주셨다. 할머니는 마치 아라리를 위해서 태어나신 양 아라리 가락속에서 삶을 생활화했으며, 그 무렵부터 정선읍내에서 알아주는 소리꾼으로 소문이 났고 읍내에 큰 잔치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초대를 받아 소리를 하셨다. 무른박 장단에 맞추기도 하고 때로는 장고 가락에 맞추어 한껏 흥을 돋우시곤 했다. 꽃본나비 물 본 기러기 탐화봉접 아니냐 나비가 꽃을 보고서 그냥 갈수 있는냐' 할머니는 그날 그날 상황에 맞추어 창작하신 가사를 덧붙여 아라리를 부르것이 흥겨움과 분위기를 한껏 고조될 수 있도록 유도 햇으며, 이것이 인기 요인이 아니였을까 싶다. 죖오늘 갈런지 내일 갈런지 정수정망이 없는데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놓았나' 라는 할머니의 아라리 가락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며 그 가락이 머릿속에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김순녀 씨, 이런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고모(김옥자 76세)도 아라리멋에 흠뻑 취해 살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의 일상생활이 그러 했으니 고모도 자연스레에 익숙해진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현재 76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정선읍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며 아라리 할머니로 통한다. 그 만큼 구슬프고 구성진 아라리 가락을 구구절절이 잘부르시기에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취재진이 찾아와서 녹음해 간다. 김순녀 씨의 아버지는 평생 농사를 지으시며 살아온 전형적인 농사꾼이지만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소를 몰고 밭을 갈대도 감자와 강냉이를 심으면서도 콩밭을 메면서도 고추를 따면서도 아라리를 흥얼거린다. 특히 도리깨질에 맞추어 아라리를 부르며 명창이 따로없다. 죖놀다가 노랑북새는 내가 감당할꺼니 열두 돌다리 외나무 다리를 부디 조심하세요' 이런 아버지에게 시집 온 어머니 또한 아라리 가락에 흥미를 느끼는것 당연하지 않을까. 함께 해온 세월이 50여년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니 자연스레 몸에서 느끼며 가슴으로 삶의 일환이 되어버린 셈이다. 김순녀 씨가 생각나는 건 "어렸을 적에도 가족이 시간과 장소에 연연해 하지 않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라리 가락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행복해 보이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구다” 라고 회상한다. "우리 집안에서 정선아리랑은 태교 음악이나 다름없죠. 뱃속에서부터 들었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정선아리랑을 잊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동생 김순덕도 정선에서 정선아리랑 지킴이로 소리꾼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82년 정선아리랑경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1985년 KBS 전국노래자랑 우수상 수상, 1999년 정선아라리 전수장학생으로 지정받았으며 2003년 서울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김순덕 씨는 정선 5일장만 되면은 어김없이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정선아리랑 창극무대에 오른다. 뛰어난 소리 실력을 인정받아 정선군이 제작한 정선아리랑 창극 신들의 소리, 아우라지, 아! 정선아리랑, 거칠현등에 300여회 이상 고정 출연하며 주연 소리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고한여고, 정선중, 사북초, 고한초, 사음초 등 관내 초·중· 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정선아리랑 전수교육에도 앞장서고 있으며, 또한 아들(김상근 21세. 전주대 재학 중), 딸(김상아 16세)도 어머니 김순덕 씨의 대를 이어 정선아리랑 전수교육을 받고 있다. 이런 대를 이어온 아라리 사랑은 김순녀 씨를 피해갈 수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하고 싶어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으나 어머니는 안된다고 했다. 그 시절엔 누구나가 그러했듯이 본격적인 소리 공부를 하면 기생이 된다는 생각을 하시었다. 하지만 맘이 콩밭에 있으니 아무런 희망도 살 용기조차도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가는 순녀 씨을 보고 안타까운 고모가 어머니에게 "우리 동네에 소리 공부를 가르키는 선생님이 계시니 한번 보내나 보라고 권유 했지만 어머니는 안된다는 말씀, 그러나 아리랑을 꼭 해야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몇날 몇일을 졸라서 겨우 허락을 얻어냈다. 이렇게 김순녀 씨는 정선에서 제일가는 소리꾼이자 명창인 김병하 선생을 만나게 됐다. 힘겹게 얻어낸 허락이니 얼마나 열심히 했겠는가? 밤낮을 가리지 않았으며 잠을 자다가도 아라리를 흥얼거리기가 한 두 번이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영월에서 KBS 라디오 민요백일장이 열렸다. 당시엔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청취율이 상당히 높은 프로그램이였다. 지금에 경기소리나 민요 하시는 중견 명창들은 이 프로에 한번정도 출연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인기있는 프로그램으로 기자는 알고 있다. 김순녀 씨도 이때 아라리를 불러서 1등상인 최우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자신감과 희망이 더욱 더 고조됐다.그러던 중 김뻑국 선생이 정선에 순회공연차 들러 무대를 만들고 정선을 대표하는 소리로 김병화 선생과 정선 아리랑을 함께 불렸다. 이를 본 김뻑국 선생이 죖전국순회 공연을 하고 있는데 정선 아라리를 전국적으로 보급시켜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정선아라리 하나로 소리에 대한갈증을 느끼던 중 이같은 제안을 받은 김순녀 씨는 혼쾌히 김뻑국 예술단 입단과 동시에 전국순회 공연에 합류하게 됐다. 김순녀 씨의 인기은 곧 나타났다. 가는 곳마다 너무 생소하고 맑은 정선 소리에 많은 관객들은 감탄과 환호로 반겨 주었다. 그리고 공연 순회 중 김순녀 씨는 소리에 전환점이 된 너무 귀한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중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인 故 안비취 선생을 만났다. 안비취 선생은 맑은소리와 성격이 온순하고 예의바르다는 이유로 선뜻 시간 날 때마다 민요를 가르쳐 주었다. 또한 얼마전 돌아가신 박동진 선생(무형문화재 5호)은 소리꾼이기전에 사람다움을 늘 강조해 주면서 물신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너무도 크나큰 선생님들을 옆에서 뵙고 그 분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인생역전의 큰 행운과 은혜를 받았다”는 김순녀 씨는 그리고 몇해의 세월이 흘러 제주도에서 열린 제2회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85년)했다. "저에게 참으로 영광스러운 상이였지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늘 잊혀지지않는 故 안비취 선생님과 故 박동진 선생님, 정선아라리 기능보유자이신 김병화 선생님, 김뻑국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린다”고 전했다. 또한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과 아울러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리랑이 세계 곳에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고 앞으로 더욱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하며 많은 질책 보내주길 바란다는 김순녀 씨는 2004년 8월 16일 '삶의 소리 천년의 노래 정선아리랑'(지구레코드 CD8매)을 녹음했으며, 현재 아카데미 정선아리랑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국악신문 초청공연으로 전 좌석 초대공연이다. 문의 : 김순녀(010-6258-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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